한국도 가입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는 “모든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를 갖습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편 유엔 사회권 위원회는 최근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를 내리면서, “부모의 지위에 관계없이 아동의 보편적 출생 등록을 보장”하라고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 또는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라고 불리는 제도가 바로 “모든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아동의 출생 등록이 왜 중요할까요? 출생 등록이 되지 않으면, 아동의 법률 상의 신분의 증명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 국적의 어린이인지, 예방접종 대상인 어린이인지, 불법입양의 위험에 처한 어린이인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국가가 아동의 존재를 알지 못하니 미취학 아동 전수조사에서도 누락되어, 아동학대 피해를 예방할 수도 없습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예방접종도, 의무교육도 받지 못한 18세 소녀의 사례가 최근에 알려지기도 하였습니다. (동아일보 17.3.14.자 보도 [카드뉴스]학교도 병원도 못 가봤다…있어도 없는 ‘18세 유령 소녀’ )
현재 우리나라 가족관계등록법은 출생신고 의무를 부모에게 일임하고 있는데, 부모가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경우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감독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많은 선진국들은 분만에 관여한 의료기관이 출생 즉시 출생사실을 정부에게 알려서,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정부가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대표발의한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도, 이러한 취지의 제도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링크] 이러한 법안이 통과되면 최근 보도된 바와 같이 산부인과에 태어난 신생아가 몇 년 뒤 시신으로 발견되기까지 아무도 몰랐던 비극적인 사례는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MBN 뉴스 2017.6.19.자 보도 “‘구멍 뚫린’ 출생신고제 … 신고 안 하면 그만,” )
출생등록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이주아동의 문제입니다. 이주아동의 출생신고는 현행 가족관계등록법 상의 ‘출생신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관공서에 출생신고를 한다고 해도 신고에 대한 ‘수리(접수) 증명서’의 발급만 가능합니다. 수리 증명서는 ‘출생한 사실’을 증명하지 않고, ‘신고를 수리했다’는 사실만을 증명하기 대문에, ‘출생 증명서’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즉, ‘출생신고’를 통해 한국 정부에게 아동의 출생 사실을 알리더라도, 정부는 해당 아동이 자신의 출생사실과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들은 본국 대사관을 통해서 출생을 신고하라는 입장이지만, 이것이 힘든 외국인들이 많습니다. 본국 정부의 고문, 체포 등의 박해를 피해서 한국으로 도망친 난민들이 대표적입니다. 한국에 아예 영사관이나 대사관이 없는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도 많습니다. 미등록 상태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신고를 하려고 해도 본국 대사관에서 문전박대 당하거나, 몇백만원을 신고비로 내라고 요구 받기도 합니다.
자신과 무관한 사정으로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무국적 상태로 남게 된 이주 아동들은, 어느 국가의 보호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한국은 인권적 관점에서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아동들에게 응급의료비 지원, 예방접종 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들은 이러한 혜택의 대상이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부모의 본국에게도 아동의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여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국제기구들은 수차례 한국 정부에 대해 외국인에 대한 출생신고 제도를 개선하라는 권고를 내리기도 하였습니다.